2008.7.3 모기의 죽음

보통 모기가 내 팔을 물더라도 그냥 배불리 먹게 놓아둔다. 뭔가를 죽이는게 싫어서다. 

언젠가 밤에 재미난 책을 보고있는데 밝은 전등빛에 홀려 벌레들이 몰려들어 몹시 불편했다. 밤새 책을 읽고 책상을 보니 모기 시체들로 책상이 어지러웠다. 자기 목적에 방해가되면 사람이 쉽게 잔인해지나 싶다. 

by 박경민 | 2008/07/03 20:11 | 트랙백 | 덧글(3)

베르톨드 브레히트 잘못나는 비둘기

한 비행사가 비행을 하다가 문득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그런데 비행사는 비둘기들이 잘못 날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공공학의 제1원칙은 모든 비행물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몸통을 수평화 유선화 해야한다. 그런데 비둘기들은 몸체를 한껏 세우고 날개깃을 전진방향으로 잔뜩 치켜 세웠다가 뒤로 젖히며 날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공기의 저항을 흘려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자 하는 몸동작과 같았다. 결국 과학자로서 비행사가 내린 결론은 비둘기가 잘못 날고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런가. 비둘기들은 잘못 날고 있는가.

by 박경민 | 2008/06/28 10:10 | 좋은글 일단펌 | 트랙백 | 덧글(0)

2008.6.28 날 소개해봐


무언가를 실현하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들기에 망상을 통해 실현된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건설적이지 못한 허무한 행위지만 더 나은 나를 바라고 있고 그 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긍정적 해석도 된다. 내가 했던 망상들을 되짚어보며 무의식속의 내 욕망들을 하나하나 꺼내고 있노라면, '내가 이렇게 컴플렉스 덩어리였나'싶다. 특별한 컴플렉스가 없다 생각했는데, 스스로 평균 이하라 생각하는 모든 부분들이 컴플렉스였다.'모든것을 잘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있다. 바꿔말하면 '한가지는 잘 해야 한다.'

언젠가 다수의 대중앞에 내가 소개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사회자가 날 '착한 경민이'라 소개했었다. 꽤 된 이야기 인데도 생각나는 걸 보니 몹시도 신경 쓰이고 억울했나보다. 그런데 정말로. 날 뭐라고 소개해야 될까? 날 10년가까이 본 내 친구들은 날 뭐라고 소개할까? 소개받은대로 착하기라도 해야할텐데.

by 박경민 | 2008/06/28 10:03 | 트랙백 | 덧글(2)

2008.6.22 다시 마시려거든

2008.6.22 다시 마시려거든

근 몇년간 날 힘들게하던 사람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괜찮은 글 하나를 썼다. 몇번을 망설이다 올리지 못했다. '침뱉은 우물물 다시 마시려거든'이란 글귀가 맴돌아서다. 침뱉고 다시 마실 용기도 다신 안마시겠다는 확신도 안든다. 침뱉고 다른 우물 찾기보다 내우물에 남이 침 안 뱉게 용써야지 싶다.

by 박경민 | 2008/06/22 18:38 | 내 생각은 말야 | 트랙백 | 덧글(0)

박찬욱 - 아님말고.

종팔이-딸의 애칭- 가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아왔다. 궁리긑에 떠오른 한마디 '미워도 다시한번' 얼마나 좋은가. 식구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죽도록 싸우고 나서도 돌아서서 조용히 이렇게 읖조릴 수 있다면. 그런데 그 말은 영화제목만이 아니라 거창고등학교 어느 교실의 급훈이란 걸 알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훈을 표절할 수는 없는일... 몇시간 후 마침내 나는 이런 문장을 백지에 적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면 말고'

나는 말했다. 뭐든지 멋대로 한번 저질러 보는 거야. 그랬는데 분위기 썰렁해지면 그때 쿨하게 이말을 읖조려 주는거지. 종팔이는 정말 좋아했다. 본래 아이들이란 늘 멋대로 한번 저질러 보고싶어서 미치는 인종이 아니던가. 하지만 역시 어른들은 달랐다. 이튿날 종팔이는 선생님께서 '세상에 뭐 이딴 가훈이 다 있냐'며 새 걸 받아오든가 뭔가 납득할만한 설명을 받아오라고 하셨다고 전한다. 나는 한번 정한 가훈을 무를수 없다면서 이렇게 납득할만한 설명을 덛붙였다.

"현대인들은 자기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오만한 태도다. 세상에는 의지만 갖고 이룰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닥쳐오는 좌절감을 어쩔것인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툭툭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경쟁만능의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건 포기의 철학, 체념의 사상이 아닌가. 이 아빠도 <복수는 나의것> 으로 네 친구의 아빠 -곽경택-가 만든 영화<친구>를 능가하는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싶었으나 끝내 1/20밖에 안되는 성적으로 끝마쳐야 했을 때 바로 그렇게 뇌까렸던 것이다. '아니면 말고...'

- 경향신문 2002.10.12 -

by 박경민 | 2008/06/21 17:03 | 그들의 명언 | 트랙백 | 덧글(2)

김어준 - 어른 어디 없소

(생략) 어떤 데이터든 일정량 이상 축적되면 최소공배수가 발견되기 마련. 그동안 접한 모든 고민들은 다음 몇가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첫번째,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직업에 대한 고민이든 사랑에 대한 고민이든, 미래에 대한 공포,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황망해들 했다. 사실 불확실한 걸 무서워하는 것까진 전혀 문제없다. 그게 두려워 징징대는 것까지도 누구나 하는 것이고. 문제는 공포, 그 자체를 문제삼는다는 거다. 불확실성은 삶의 본질인데. 무서운 건 너무 당연한데. 그 무서움에 어떤 방식으로 맞서느냐 하는것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를 결정하는 건데, 대부분은 무서움 그 자체를 무서워 한다. 그래서 무서움이 아예 사라지길 원한다. 자궁 속 태아 이외 그런건 없는데 말이다.

두번째,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스스로도 모른다.
그래서 남들한테 물어선 도저히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그렇게들 해댄다. 예를들어 누구와 만나고 누구와 헤어져야 하는지 따위의 질문들은 결국 스스로 어떤 삶을 원하는지, 삶에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게 무엇인지, 그 행복을 얻기 위한 대가로 어디까지 지불할 각오가 되어있는지에 달렸다. 그러니까 그런 고민은 결국 자신밖에 답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 본원적 질문은 건너뛰고 그저 남들은 어떻게 선택했는지 궁금해만 한다.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스스로도 모르니 그럴수밖에.

세번째, 자신이 너무 중요하다.
물론 다들 자신이 중요하다. 그런데 문제는'자신이 겪고있는 통증만은 특별히 유난하고 각별하다.' 여기는 데서 출반한다. 그래서 왜 하필 자기만 그런 걸 겪어야 하는 건지 억울해하고 분해한다. 그러나 한편의 소설이라며 풀어놓는 좌절과 분노의 내막을 듣고보면 그정도 갈등 없이 세상사는 사람 대체 어디있나 싶을 정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자기 돌보는데만 여념이 없다보니 남들 고통은 어떤지 살필 보편 감성이 부족한게다. 이 공감능력의 결여는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객관화가 안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게 옳을게다.
나이와 학력에 상관없이 발견되는 이들 공통점의 공통점이 또 있다. 뭐냐, 어른스럽지 않다는거. 사회경제적으로 명백한 성인이어야 할 나이와 위치인데, 어른이 아니다. 하여 지난 몇년간 상담끝에 내린 결로은 이렇다. 최근 우리 사회가 어른 육성에 실패하고 있다고. 내가 언제 행복한지 알고 담담하게 삶의 불확실성을 스스로 맞서는 어느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런 어른을 만나기가, 매우, 어려운 세상이다. 근데 이성장지체는 대체 누구 탓일까...

by 박경민 | 2008/06/21 17:02 | 그들의 명언 | 트랙백 | 덧글(2)

김창완 - 평생을 피웠던 담배를 어떻게 끊었냐구?

평생을 피워왔던 담배를 어떻게 끊었냐구? 뭐 그렇게 어렵지 않아. 따라해봐.

견딜만하다.

딱 이 다섯글자만 되뇌면 만사 오케이야. 담배를 끊고 나서 한 사흘쯤 지나면 악마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거든 "너 지금 한대 빨고싶지" 절대로 부정하지 마. 솔직히 담배피고싶은건 사실이잖아. 대신 견딜만하다고 조용히 맞받아주면 되는거야.

by 박경민 | 2008/06/21 17:01 | 그들의 명언 | 트랙백 | 덧글(2)

2008.6.21편지의 즐거움

편지의 즐거움

MP3보다 CD가 좋은것처럼 덧글보다 편지가 좋다. 올해들어 처음 팥빙수를 먹었다는 편지글은 박민규 이기호의 글보다 신선했고 밤에 꼼장어가 당긴다는 편지글은 박경리 황석영의 글보다 진지했다.

편지받을때가 가장 즐겁다. 자! 어젯밤에 무심코 냉장고를 열어 아이스크림 네통을 먹었다는 이야기부터 내게 편지 쓰시라.

by 박경민 | 2008/06/21 15:00 | 생활의 발견 | 트랙백 | 덧글(2)

08.6.19 라면 물은 알맞게.



라면은 짜서 몸에 나쁘다. 밤에 컵라면에 물을 선까지 붓고 더 부을까 망설이다 말았다. 영화에서 이미숙이 이런말을 했다. "이년아! 내가 커피달라면 그냥커피 달랬지! 디카페인 마실거면 몸에좋은 우유를 마시지 커피를 왜 마시냐?"

by 박경민 | 2008/06/19 20:49 | 내 생각은 말야 | 트랙백 | 덧글(5)

일부러 못된짓 한 다음에 욕먹는 연습.

드라마 연애시대에 나오는 한 정신과 의사는 물에 잘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수영초급반에 몇번이나 재등록한다. 수영강사인 주인공이 다른 운동을 권하며 그 이유를 묻자 그 정신과 의사가 되묻는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장 공격적인 방법이 뭔줄 아세요?"

여기서 재미있는것은 트라우마가 극복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처음 드라마를 봤을때, 트라우마가 인정의 대상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라는데에 놀랐었는데. 요즘들어 이해가 된다.  트라우마가 인정의 대상에서 극복의 대상이 되는것은  트라우마의 대상이 '소수의문제이냐 다수의 문제이냐'의  차이다. 해서 오이나 쥐에대한 트라우마는 인정의 대상이지만 쌀밥과 강아지에 대한 트라우마는 극복의 대상인것이다. 좋게말하면 동류를 만들어 가는 사회화의 바람직한 과정인데, 다만 그게 올바른 것인지는 의문이다. 

일부러 못된짓을 하고  욕먹어 보거나 약속시간에 일부러 30분정도 늦은 뒤 무안을 당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는 강의를 들었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면 자극에 둔감해져야 하는데 이는 위와같은 훈련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민감한'편인데, 이게 쉽게 안된다.
 
위대한 개츠비의 앞부분을 부면 주인공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내가 남의 말에 더 화를 잘 내던 무렵'이라고 묘사한다. '둔감하다' 는것이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둥글둥글하게 모난 내 트라우마들을 쳐나가며 극복해낸 성과물인지 생각해본다.

by 박경민 | 2008/04/26 15:48 | 내 생각은 말야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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