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12일
엄마의 소설
엄마가 말했다. 소설을 쓸거야.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야겠어. 나는 대답했다. 그게 말이돼? 하긴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했을때도 속으론 마링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몇년동나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녔다. 엄마는 기어코 대학까지 들어갔다. 이번겨울 어디쯤 졸업을 한다는 것 같다.

내가 대학을 다닐때 엄마는 종종 전화를 걸어 언제 들어오냐고 묻곤 했다. 밤늦게까지 놀러 다니지 말고 공부나 해, 가 아니라.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집에가면 엄마는 항상 식탁에 앉아서 수학책이나 영어책을 펴놓고 있었다. 젖은 김 같았다. 다시 바삭바삭해지는 날이 안 올 것 같았고 중학교에 가서 엄마가 처음으로 이해를 못했던 건 집합의 정의였다. 그러니까 예쁜꽃들의 모임이 왜 집합이 안 되냐는 거였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잖아. 예쁜건 다 예쁜 거 아닌가? 집합같은거 지구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탁위에서 엄마는 너무 시들었고 나는 너무 슬펐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형에서 비싼 과외를 시켰다. 장남이니까.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가져온 생활기록부 카드를 한참 들고다니다가 중졸이라고 적었다. 아빠 학력란엔 고졸이라고,   엄마가 적었다. 아빠도 엄마처럼 초등학교밖에 안나왔는데.

형은 심지어 나보다 공부를 못했다. 어떤 날은 정말 눈부시게 눈이 왔다. 덜덜 떨며 찔끔찔끔 울며 나는 절대 형처럼 엄마 아바를 괴롭히진 않을 거야, 다짐하고 다짐했다. 중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들은 네가 우진이 동생이냐고 물으며 신기하게 쳐다봤다. 난 불량하게 생기지 않았고 학습지만 풀었을 뿐인데 십오등안에 들었다. 그러나 나도 엄마 아빠의 자랑거리는 못됐다. 하필 엄마 친구에 애들은 다 5등 안에 드는 애들 뿐이었다. 과외만 받았어도....

형이 이년제 대학에 입학했을 땐 온 가족이 만세를 불렀다.소파위에서 방방뛰는 형을 보며 , 공부를 저렇게 못해도 대학에 가는구나. 생각했다. 형은 우리집안 최초의 대학생이었다. 형보다 더 비싼 과외를 받은 사촌 형도 못 간 대학을, 깡패같은 우리 형이 간거다. 형과 나를 선비로 키우고싶었다고 언젠가 엄마는 말했었다. 엄마는, 돈 없어서 못 배운 게 한이 돼서, 똑똑한 아들을 가지고 싶어했다. 나는 지방대에 갔다. 하지만 형보다 2년이나 더 긴 학교였다.

대학에서 나는 시를 썼다. 미친듯이 썼다. 그렇게 10년을 살았지만 시인이 될 거란 확신은 한번도 못 가져봤다. 그건 다른 세상 얘기였다. 우리 학교엔 등단한 선배도 없었다. 그래도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났다. 가장 열심히 한, 단 한 명에게 그 명예를 주는 거라면, 정말, 자신있었다. 지구에 누구도 나만큼 열심히 할 순 없었다. 이것이 내가 태어나서 가진 유일한 오만이었다. 그리고 2008년 12월 7일에 나는 시인이 되었다. 신문사로부터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주룩주룩 눈물이 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아... 나는 게속 울기만 했다. 왜그래. 엄마, 나 됐대. 당선됐대. 엄마도 울었다.

엄마에게 문학상 수상 소설집 세 권을 주며 말했다. 문예창작과엔 내년에 가고 일 년 동안 이 소설집으 노트에 옮겨 적는거야. 그러면 소설을 쓸 수 있냐? 응.

새벽에 물을마시러 거실에 나갔는데, 엄마가 식탁에 앉아 소설을 적고 있었다. 선비 같았다.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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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민 | 2009/02/12 20:08 | 좋은글 일단펌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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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사회악 at 2009/06/27 12:15
스압이라 안읽었었는데 이제 읽어본다 와 짠하네 제기랄 네가 저번에 이야기했던 input -> output이 이거구나

더운데 고생이 많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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