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13일
두 여자 이야기
'이 직업이 싫어, 미칠 것 같아.' 그녀는 먹은 것도 없이 체했었다. 손이 떨리고머리는 빙빙 돌았다 버스에서는 서 있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더 이상은 못하겠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대출금 상환이 2년이나 남아있었다. 어제는 괜히 싸웠다. 나는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여자는, 전화를 끊고나서 잠을 못 잤다고 했다.싸워서가 아니라, 하고 있는일이 싫어서. ' 그리고 한참 울다 잠들었어' 스물 아옵 여자친구는, 갇혀 있었다.

설거지를 하던 쉰 여섯 여자는 말했다. '난 그림 그릴때가 제일 행복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바로 선생님이 됐었다. '그림 그리고 싶다'는 말은 차마 입밖으로 내지도 못했다. 남동생이 두명,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 남동생들은 대학에 가야 했고, 여자는 돈을 벌어야 했다. 그건 맏이의 의무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됐다. 종례는 귀찮아서 안하는 '쿨'한 선생님 이었다. 미니스커트를 즐겨입었다. 그땐 1970년대였는데, 심지어 충북 영동이었는데, 거기서 '바바리 코트'와 검정뿔테가 잘 어울리는 총각선생님을 만났다. 결혼했고, 자식을 낳았다. 그림같은건 잊고 살았다.  먹고살기 바빴다. 여자도, 갇혀있었다. 그러다, 1999년엔 붓을 들었다. 막내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그해 봄이었다. 매주 수요일, 집 안엔 유화물감 냄새가 났다. 거실에 걸려있는 전신거울 밑에는 여자가 그린 그림이 일주일 단위로 바뀌어 놓였다.여자가 그린 해바라기는 태양보다강렬했었다.그건 20년을 넘게 참아온 붓질이었다. 여자의 에너지였다. 누군가 사겠다고 해도 팔지 않았다. 12시가 다 돼서만 집에 들어오는 막내 아들은 매주 수요일 밤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다짐했었다. 언젠가 엄마가 전시회를 열면, 도록 첫 페이지엔 꼭 직접 글을 쓰겠다고,

아까, 울다 잠들었던 스물아홉살 여자도, 열일곱살엔 미대에 가고싶었다. 그런데 부모님께 말을 못 했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투덜댔다. '난 그때 열 일곱이었는데, 늦었다고 생각했어. 열일곱살밖에 안됐었는데...' 그러곤 댓생을 배우러 문화센터에 나갔다. 주말마다 행복했었다. 문화센터엔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때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시기를 놓쳤던, 그게 아쉬워서 참을수가 없었던. 하지만 문화센터는 3개월 짜리였다. 그게 끝나자 스케치북도 덮였다. 그리고 어제, 여자는 답답해서 울었다. 아침엔 퉁퉁부은 눈으로 출근했다. 하루종일, 먹은것도 없이 체해있었다.

한편, 쉰여섯 여자가 그린 그림은 집 안 한켠에 촘초히 쌓여갔다. 이 자유로운 여자가, 이십 년 넘게 갇혀있었다. 가둔 건 집, 그리고 가족이었다. 그건 '엄마'라는 이름의 희생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진 않다. 딸이 낳은 딸도 돌봐주고, 남편 밥도 차려주고, 새 반찬도 만든다. 삼십년 넘게 해온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나마 말이 좀 통하는 아들 녀석은 , 마감이라고 매일 새벽 2시가 돼야 집에 돌아온다.오늘 아침엔 설거지 하다가 아들한테 말했다. '우성아, 엄만 그림그릴때만 행복해' '응? 엄마, 나랑 밥먹을때도 행복하다며'웃으면서 농쳤다. 그림 그릴때 행복한건 좋은데 그림 그릴때만 행복한건 슬퍼요 엄마. 속으론 이렇게 생각했다.

/정우성.
by 박경민 | 2009/02/13 17:42 | 좋은글 일단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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